아버지께서 시 한 편을 쓰셨다. “참회(懺悔)” 라 이름 붙이셨다. 시는 길고, 한 번에 다 읽히지 않는다. 시를 그대로 옮기고 짧게 감상문을 써볼까 한다.

참회(懺悔)

술을 먹으면 알딸딸하게 좋다가도
새벽에 악몽으로 깨고 나면
왜 이리 심장이 끊어질 듯 아려오는가?
저 깊고도 아득한 기억의 저편
음습한 혼돈의 바다 속
잠자던 악령이 깨어나
사지를 쇠사슬로 묶고
펄떡이는 심장을 도려낸다.

도대체 왜?
한편의 일그러진 분노와
또 한편의 형언할 수 없는 불안
뜯겨나간 허탈한 자리에
불현듯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중학교 때였던가?
참 마음이 고왔던 아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아이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던 아이
서로 마주보다가 묘한 감정에
서로를 밀어냈던 애틋한 아이

난 쬐끔, 넌 악성 소아마비
병신새끼들! 육갑떨고 자빠졌네.
짝패들의 시선과 조롱에 움츠러들며
너를 홀로 화살받이로 세워놓고는
숨더니 외면하고 도망치는 나.

백옥의 얼굴이 촛농처럼 흘러내리며
점점 악다구니로 변해가는 너.
‘미안해’ 말도 못하고 피해 다니는
“비겁한 새끼”
나의 또 다른 이름

고등학교 ?학년 때였지.
“잘난 체 하지 마!”
짝궁이 하는 말에
대뜸 인정사정없이
그의 여린 뺨에 주먹을 날린다.
뭐 대단치도 않은 말에
의기양양 거들먹거리며
왜 그리 거만하게 굴었는지?
“못난 새끼”
또 다른 나의 악령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절친의 “너무 하네!”
한마디에 절교를 한
“옹졸한 새끼”
또 하나의 악업이 추가된다.

언제였던가?
육중한 체구의 그들은
칠성판에 뉘어 놓고 사지를 비틀며
나의 부끄러운 심장을 해부한다.
나는 수백 번의 진술서를 써내려가며
“비겁한 새끼”,
“못난 새끼”,
“졸렬한 새끼"임을 자인한다.
신념과 의지는 한낱 공염불이었음을
수십 번의 반성문으로 또 다시 입증한다.
나의 육신과 영혼은 너덜너덜 찢긴 채
쇠사슬에서 풀려나 허공 속으로 흩어진다.

이따금 미몽을 헤맬 때마다
뫼비우스 띠처럼
한편의 광기와
반대급부의 수치심이
당혹스럽게 외길에서 만나
과거와 현재가 얼굴을 마주한다.

그들이 나의 심장을 도륙하듯
나 또한 너의 심장을 도려냈구나!
그들이 나의 영혼을 난도질하듯
나 또한 너의 영혼을 산산이 부숴났구나!

그렇게 잊혀진 세상은!
현란한 시니피앙의 깃발에 난무하는
시니피에의 지루박 댄스 장
시니컬한 포스트모더니즘 장단에
초조한 욕망들만이 아우성친다.

기껏 살아낸 삶의 족적들, 나의 새끼들!
더러운 새끼, 치사한 새끼, 야비한 새끼
오만한 새끼, 응큼한 새끼, 추잡한 새끼
편협한 새끼, 냉담한 새끼, 비열한 새끼
교활한 새끼, 악랄한 새끼, 역겨운 새끼…

무수한 새끼들이 옷깃을 여미며
버젓이 음흉한 거리를 활보하는데…
인생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새끼줄
새빨간 위선에 포박당한 오랏줄.

황혼 녘 시뻘건 구름이 취한 듯
상처받은 영혼들이 비틀거린다.
심장과 영혼들이 녹아내리며
붉게 물든 얼굴이 일그러진다.

질척대는 욕망의 잔재를 태우고
내안의 순수를 깨울 수 있다면
영혼을 정화하고 위로하기위해
너와 나, 우리의 희망을 위해
새로이 피어나는 여명을 위해…

슬픈 대지를 품에 안은 붉은 노을
스러질 듯 몸부림치는 불길 속을
부나방이 되어 걷고 또 걸어간다.
몽환적인 핑크보랏빛 그라데이션에
취해 흑갈색 침묵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시를 다 읽고 한참을 멈춰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단어가 너무 강해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 읽으면서 “그들이 나의 심장을 도륙하듯 / 나 또한 너의 심장을 도려냈구나” 한 구절에서 한 번 더 멈췄다. 아버지가 칠성판에서 사지가 비틀린 그 자리에서, 본인이 도망쳤던 소아마비 친구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는 게 시 안에 적혀 있다. 받은 고통이 준 고통을 비춘다는 인식이 시 전반에 걸쳐 있다.

아버지가 부끄러워하는 그 “새끼들” — 비겁한 새끼, 옹졸한 새끼, 졸렬한 새끼 — 을 한 줄씩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들을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을 텐데, 시 안에서는 그 이름을 다 부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안에 쌓아두셨던 부끄러움을 끝내 시로 꺼내놓으신 일 자체가 다행스러웠다. 그 부끄러움을 끝내 글로 꺼낸 사람이라는 게 단어들 사이로 보였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그 새끼들이 내게는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보이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서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처음 만난 것 같았다.

마지막 연을 한참 들여다봤다. 황혼의 불길 속을 부나방이 되어 걷고 또 걷는다.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고 적혀 있지만, 나는 그 부분이 사라지는 장면으로 읽히지 않았다. 시가 끝났는데도 부나방의 발걸음만 계속 가고 있는 게, 아버지가 시 한 편으로 참회를 끝내지 않으셨다는 인상으로 남았다. 시를 끝까지 읽었고, 한 번 더 읽었다.